안녕하세요. 녹색교통운동 사무처입니다.
창립 초기인 1993년 회원으로,
1996년부터 2001년까지 녹색교통운동의 활동가로 녹색교통과 함께하신 임선영 선생님께서 지난 7월 6일 운명하셨습니다.
녹색교통 활동가로서 당시 교통사고유자녀돕기 사업으로 장학사업, 유자녀캠프 등 장학생들을 직접 만나고 아이들과 함께하는 활동의 중심이 되는 선생님이셨습니다.
비록 앞으로 임선영 선생님을 뵐 수는 없지만, 90년대 활동의 기반이 지금 교통사고피해가정 지원 사업을 꾸준히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임선영 선생님이 회원으로 1993년 녹색교통운동에서 진행했던 '보행권 신장을 위한 도심지 시민 걷기대회'를 참여하고 남기신 글을 회원분들께 소개합니다.
녹색교통 장학생, 회원으로 참여하셨던 분들의 기억에 남아있을 선생님을 기억하며...
선생님, 삼가 고인의 명복을 기원합니다.
녹색교통운동 사무처 일동
걷는 데도 찾아야 할 권리가 있었던가? 보행권 신장을 위한 도심지 시민 걷기대회 참여기
임선영
넓게 뚤려진 도로 양편에 초라한 모습으로 뚱하니 서있던 가로수엔 언제부턴지 하느적 흔들리는 녹음이 달려 있다.
시끄럽고 복잡한 시낸느 사양하고 싶은 일요일. 무슨 궐기대회도 아니고, 단합대회도 아닌데 걷기대회라고 했다.
걷기대회라면 혹시 올림픽에서나 볼 수 있는 경보 경기처럼 오리궁둥이 모양으로 뒤뚱이며 걸어야 하는 건 아닌지 상상을 하며 평소에 찾지 않던 탑골공원으로 향했다. 머리에 흰눈이 내린 할아버지, 할머니 몇분이 벌써부터 자리를 차지하고 계신 공원은 아직 선선한 아침 공기를 그대로 머금고 있었다.
아이들의 고함소리, 휠처에를 타고 나온 사람, 어디서 본 듯한 낯익은 얼굴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어수선하니 무리를 이룬 사람들 사이로 카랑카랑한 꽹과리를 앞세운 사물놀이패의 한바탕 마당굿이 시작되면서 시민의 권리를 되찾자는 걷기대회는 시작되었다.
나무와 풀들이 어우러진 한적한 공원을 한가로이 거니는 걷기대회도, 일등 이등을 다투는 걷기대회도 아니었다. 벽돌과 콘크리트를 눌러 만든 보도를 함께 걸어보며 보행자들이 갖는 권리는 보호되야 한다고 말하고자 했던 대회였다.
이날 걷기대회에 참여한 많은 사람들은 턱없이 짧은 파란신호 주기로 횡단보도를 헐레벌떡 뛰어건너야 했고, 인도의 폭이 갑자기 좁아지는 곳과 아예 인도가 슬그머니 사라지는 곳을 걸으면서 보행자의 권리가 얼마나 묵살되고 있는가를 체험했다.
날로 변화해 가는 도시에선 자동차 매연과 경적소리가 높아지고 길이 좁아 차가 다닐 수 없다는 아우성에 차도를 넓히고 넓혀왔기 때문일까?
땅을 밟고 살아야 하는 우리가 서야 할 땅떼기가 점점 좁아져 간다는 것은 누구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드높은 빌딩 사이로 드리운 회색빛 하늘을 이고 구석구석 이어진 골목길까지 주차장으로 변해 버렸고 서로 어깨를 부딪히며 걸으면서도 행여 차가 한대 지나갈 양이면 걸어가는 사람은 어느 구석으로든 비켜서야만 하는 자동차 우선주의가 만연해 있다. 또한 차들이 무섭게 내달리는 길에는 더더욱 내려설 엄두조차 낼 수 없도록 금 그어진 성역으로 굳어진 것은 새삼스레 이야기 하지 않아도 그렇게 각자의 가슴속에 불만 아닌 불만으로 쌓여 있을 것이다.
그러나 뾰족한 해결방안도 없이 그저 차는 무서운것, 무서운 차는 사람이 피해가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게 되어 버린 것이다.
하긴, 길이 좁아 사람이 걸을 수 없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으니까 애써 걸어야 하는 사람을 위한 길을 마련하는 일도 없었겠지만, 인도를 넓힌다거나 가꾸는 일 또한 없었던 것 같다. 문명의 크나큰 혜택처럼 날로 늘어가는 자동차, 그런 자동차 문화에 길들여진 우리에게 예전처럼 걷는 것을 생각함에 앞서 어디서나 쉽게 자동차를 이용할 수 있도록 우리 사회는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찻길을 넓히는 일에만 모두들 열심이었다. 이동 수단으로 자동차를 이용하는 것이 너무다 당연한 일이 되었기 때문에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보행권이라는 말이 생소하게 느껴지는 게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걷는 데도 찾아야 할 권리가 있었던가?
횡단보도를 건널 때 누구나 조급함이 없이 안전하게 건널 수 있는 권리.
어느 곳에서든 자동차보다 사람이 보호받아야 하는 걷는 자의 권리, 이러한 권리를 보호받지 못하고 이미 빼앗겨 상처받고 아파하는 사람들이 걷기대회에 함께 모여 걷는 사람도 보호받아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를 한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가로수에 가리워지고 불이 꺼진 벙어리 신호등과 그동안 아무런 의식 없이 걸어왔던 길이 갖는 진정한 의미를, 그리고 어디서든 의당 자동차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듯 힘차게 경적을 울리며 덤비는 무서워진 자동차의 가치를 말이다.
걷기대회는 나에게 무언가 불이익을 당해도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살아가는 선량한 시민이라는 자도적인, 조금은 씁쓸한 여운까지 남겨 주었다. 그리고 일상생활 속에서 망각하고 있었던 불편하지 않은 불편들과 스스로 불편하게 만들고 또 그러한 불편에 길들여진 우리의 일상생활을 이제는 고쳐나가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문명의 편리에만 치중해서 잃어야 했던 소중한 것들과 우리 자신을 얽매고 있는 많은 관념들을 스스로 깨치기 위해 노력해야 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이렇게 한자리에 모여 불편을 체험하고 한목소리로 우리의 불편을 말할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해 주고, 우리의 소리를 모을 수 있도록 애써 준 녹색교통운동에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이번 시민걷기대회가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에 진정으로 필요하고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밑걸음이 되었다는 말도 함께 전하고 싶다.
안녕하세요. 녹색교통운동 사무처입니다.
창립 초기인 1993년 회원으로,
1996년부터 2001년까지 녹색교통운동의 활동가로 녹색교통과 함께하신 임선영 선생님께서 지난 7월 6일 운명하셨습니다.
녹색교통 활동가로서 당시 교통사고유자녀돕기 사업으로 장학사업, 유자녀캠프 등 장학생들을 직접 만나고 아이들과 함께하는 활동의 중심이 되는 선생님이셨습니다.
비록 앞으로 임선영 선생님을 뵐 수는 없지만, 90년대 활동의 기반이 지금 교통사고피해가정 지원 사업을 꾸준히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임선영 선생님이 회원으로 1993년 녹색교통운동에서 진행했던 '보행권 신장을 위한 도심지 시민 걷기대회'를 참여하고 남기신 글을 회원분들께 소개합니다.
녹색교통 장학생, 회원으로 참여하셨던 분들의 기억에 남아있을 선생님을 기억하며...
선생님, 삼가 고인의 명복을 기원합니다.
녹색교통운동 사무처 일동
임선영
넓게 뚤려진 도로 양편에 초라한 모습으로 뚱하니 서있던 가로수엔 언제부턴지 하느적 흔들리는 녹음이 달려 있다.
시끄럽고 복잡한 시낸느 사양하고 싶은 일요일. 무슨 궐기대회도 아니고, 단합대회도 아닌데 걷기대회라고 했다.
걷기대회라면 혹시 올림픽에서나 볼 수 있는 경보 경기처럼 오리궁둥이 모양으로 뒤뚱이며 걸어야 하는 건 아닌지 상상을 하며 평소에 찾지 않던 탑골공원으로 향했다. 머리에 흰눈이 내린 할아버지, 할머니 몇분이 벌써부터 자리를 차지하고 계신 공원은 아직 선선한 아침 공기를 그대로 머금고 있었다.
아이들의 고함소리, 휠처에를 타고 나온 사람, 어디서 본 듯한 낯익은 얼굴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어수선하니 무리를 이룬 사람들 사이로 카랑카랑한 꽹과리를 앞세운 사물놀이패의 한바탕 마당굿이 시작되면서 시민의 권리를 되찾자는 걷기대회는 시작되었다.
나무와 풀들이 어우러진 한적한 공원을 한가로이 거니는 걷기대회도, 일등 이등을 다투는 걷기대회도 아니었다. 벽돌과 콘크리트를 눌러 만든 보도를 함께 걸어보며 보행자들이 갖는 권리는 보호되야 한다고 말하고자 했던 대회였다.
이날 걷기대회에 참여한 많은 사람들은 턱없이 짧은 파란신호 주기로 횡단보도를 헐레벌떡 뛰어건너야 했고, 인도의 폭이 갑자기 좁아지는 곳과 아예 인도가 슬그머니 사라지는 곳을 걸으면서 보행자의 권리가 얼마나 묵살되고 있는가를 체험했다.
날로 변화해 가는 도시에선 자동차 매연과 경적소리가 높아지고 길이 좁아 차가 다닐 수 없다는 아우성에 차도를 넓히고 넓혀왔기 때문일까?
땅을 밟고 살아야 하는 우리가 서야 할 땅떼기가 점점 좁아져 간다는 것은 누구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드높은 빌딩 사이로 드리운 회색빛 하늘을 이고 구석구석 이어진 골목길까지 주차장으로 변해 버렸고 서로 어깨를 부딪히며 걸으면서도 행여 차가 한대 지나갈 양이면 걸어가는 사람은 어느 구석으로든 비켜서야만 하는 자동차 우선주의가 만연해 있다. 또한 차들이 무섭게 내달리는 길에는 더더욱 내려설 엄두조차 낼 수 없도록 금 그어진 성역으로 굳어진 것은 새삼스레 이야기 하지 않아도 그렇게 각자의 가슴속에 불만 아닌 불만으로 쌓여 있을 것이다.
그러나 뾰족한 해결방안도 없이 그저 차는 무서운것, 무서운 차는 사람이 피해가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게 되어 버린 것이다.
하긴, 길이 좁아 사람이 걸을 수 없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으니까 애써 걸어야 하는 사람을 위한 길을 마련하는 일도 없었겠지만, 인도를 넓힌다거나 가꾸는 일 또한 없었던 것 같다. 문명의 크나큰 혜택처럼 날로 늘어가는 자동차, 그런 자동차 문화에 길들여진 우리에게 예전처럼 걷는 것을 생각함에 앞서 어디서나 쉽게 자동차를 이용할 수 있도록 우리 사회는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찻길을 넓히는 일에만 모두들 열심이었다. 이동 수단으로 자동차를 이용하는 것이 너무다 당연한 일이 되었기 때문에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보행권이라는 말이 생소하게 느껴지는 게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걷는 데도 찾아야 할 권리가 있었던가?
횡단보도를 건널 때 누구나 조급함이 없이 안전하게 건널 수 있는 권리.
어느 곳에서든 자동차보다 사람이 보호받아야 하는 걷는 자의 권리, 이러한 권리를 보호받지 못하고 이미 빼앗겨 상처받고 아파하는 사람들이 걷기대회에 함께 모여 걷는 사람도 보호받아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를 한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가로수에 가리워지고 불이 꺼진 벙어리 신호등과 그동안 아무런 의식 없이 걸어왔던 길이 갖는 진정한 의미를, 그리고 어디서든 의당 자동차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듯 힘차게 경적을 울리며 덤비는 무서워진 자동차의 가치를 말이다.
걷기대회는 나에게 무언가 불이익을 당해도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살아가는 선량한 시민이라는 자도적인, 조금은 씁쓸한 여운까지 남겨 주었다. 그리고 일상생활 속에서 망각하고 있었던 불편하지 않은 불편들과 스스로 불편하게 만들고 또 그러한 불편에 길들여진 우리의 일상생활을 이제는 고쳐나가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문명의 편리에만 치중해서 잃어야 했던 소중한 것들과 우리 자신을 얽매고 있는 많은 관념들을 스스로 깨치기 위해 노력해야 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이렇게 한자리에 모여 불편을 체험하고 한목소리로 우리의 불편을 말할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해 주고, 우리의 소리를 모을 수 있도록 애써 준 녹색교통운동에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이번 시민걷기대회가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에 진정으로 필요하고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밑걸음이 되었다는 말도 함께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