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 운전자가 지녀야 할 기본 생각 10가지
1. 도로는 우리 모두 함께 쓰는 사회적 공간
최근 운전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운전자의 62%가 “다른 차가 내 차를 추월하면 기분이 나빠진다.”는 응답을 했다. 특히 15% 운전자는 ‘매우’기분이 나쁘다고 응답했다. 이런 조사 결과는 우리 운전자들이 아직 도로를 다른 사람과 함께 쓴다는 생각이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운전할 때 감정의 지배를 받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어떤 운전자들은 추월을 당하면 그 차를 쫓아가 맞추월을 해야 직성이 풀린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값싼 자존심 경쟁은 끔찍한 사고를 일으킨다.
도로에서 모두가 으르렁대며 다투는 양상이기에 ‘교통전쟁’이 라는 말도 만들어졌다. 하지만 교통전쟁이라는 말, 이제는 쓰지 말아야겠다. 전쟁이라는 말속에는 상대방을 적대시하고 정복의 대상으로 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이런 생각을 갖고 다른 운전자나 보행자를 본다면 어떻게 될까.
도로는 공공의 사회적 공간이다. 또 다른 운전자나 보행자 모두가 정복의 대상이 나이라 더불어 함께 살아가야 할 공존의 대상이다.
이제 우리의 도로에서는 불필요한 경쟁 대시네 부드러운 조화가 필요하다.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을 갖게 될 때 우리의 교통 문화는 훨씬 부드러워질 것이다.
우리의 교통에서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조화와 공존의 개념이다.
2. 보행자는 나의 가족
우리나라의 교통사고 사망자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보행자다. 매년 약5천명에 이르는 사람이 보행 중에 목숨을 잃고 있는데, 이 수치는 우리보다 인구가 훨씬 많은 미국의 보행자 사망자보다도 많은 것이다. 보행자 사고를 줄이지 않는 한 교통후진국의 불명예를 씻을 수 없다.
강자 입장에 있는 운전자들이 약자인 보행자, 특히 어린이나 약자를 보호하고 우선시하는 교통문화가 정착돼야 한다. 운전자가 보행자를 보호하는 것은 강자가 약자를 보살피는 따뜻한 마음의 표현이다.
보행자 사고를 줄이기 위해 운전자가 지켜야 할 것들은 무엇인가.
- 이면도로나 생활도로, 학교 주변에서는 시속 20km 이내로 주행한다.
- 보행자가 안심하고 건너도록 주정차를 하지 않는다.
- 주택가에서는 경적을 울리지 않는다.
- 횡단보도에서는 보행자가 먼저 지나가도록 양보한다.
어렵다면 어렵고 쉽다면 쉬운 이 원칙들, 바로 운전자가 자기 자신과 가족들을 보호하는 길이기도 하다. 거리의 보행자를 내 가족으로 생각한다면 우리의 거리를 다정한 공간으로 바뀔 것이다.
3. 교통사고에 예외는 없다.
“어때 내 추월 솜씨가.”
“사고는 재수 없는 사람들 일 아냐?”
운전에 어느 정도 이력이 붙기 시작하면 실력을 뽐내고 싶어한다. 무차별적으로 퍼부어지는 자동차 광고에 길들여진 우리는 틈만 나면 별 생각 없이 짜릿한 모험에 유혹 받게 된다.180킬로미터에 도전하고 싶고, 급한 내리막길에서도 엑셀러레이터에 힘을 가하기도 한다.
‘이 정도면’ 하는 때다 온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때부터가 문제이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 넘어서는 곤란한 선을 넘나들게 만든다. 최근 급속도로 좋아진 차량의 성능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
그 뒤 몇 년이 지나면 다시 이성을 회복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재수 없는(?) 운전자들은 사고를 일으켜 아무런 인연도 없는 남들을 비극의 주인공으로 만들거나 반대로 피해 당사자가 되기도 한다.
교통사고에서는 그 어느 누구도 예외일 수 없는 법. 해마다 1만명이 넘는 사망자, 5만명의 영구 장애인, 30만명의 부상자 대열에 나 자신이나 가족이 끼지 않으리라는 보장을 감히 어느 누가 할 수 있을까.
교통안전에 최선의 대책은 없다. 하지만 차선책은 있다. 바로 방어운전 길들이기다. 운전자랑 대신에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은 사항들을 되묻는 방법이다.
“내 방어운전은 몇 점인가.”
“「만일」보다 「설마」를 애용하진 않는가.”
“남들에게 고맙다고 하는 경우보다 짜증을 내는 경우가 더 많지는 않은가.”
교통사고는 인명피해나 물적 피해를 내는 데 그치지 않는다.
교통사고로 인한 불행은 보다 많은 사람을 고통스럽게 할 수 있고, 그 비극이 오래 지속된다는 점을 명심하자.
4. 기계에 대한 과신은 금물
“내 차는 최고급 ABS 브레이크가 장착되어 있소, 다라서 내차는 탁월한 급제동에 능하단 말이요. 그리고 요즘 차 성능이 너무 좋아졌다구.”
차량이나 기계의 성능을 신봉하는 이런 기술만능주의자들이 있다. 하지만 이들은 안전장치의 도움을 받기보다는 교통사고를 일으킬 가능성이 매우 크다.
예전에는 일부 고급 차에만 장착돼 있던 에어백이라던가 ABS 브레이크의 보급이 최근에는 소형차량에까지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예로부터 약도 잘못 쓰면 독이 된다 했다. 이 말은 자동차의 첨단 안전장치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안전장치의 장착이 난폭 운행을 해도 나는 안전하다는 식으로 과잉 해석도리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기계장치를 믿고 난폭 운전이나 과속을 하는 어리석은 운전자들이 많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ABS 브레이크는 일반 브레이크에 비해 안전성이 훨씬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잇다. 제동력을 전자제어 방식으로 컨트롤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훨씬 안정된 상태로 차를 정지 시켜준다. 하지만 ABS 브레이크는 자동차의 자세를 안정되게 유지시켜 주는 장치일 뿐, 정지거리를 단축시켜 주는 장치는 아니다.
하지만 일부 영업사원들은 ABS 브레이크가 정지거리를 짧게 해준다고 선전을 하고 있고, 적지 않은 운전자들이 그런 착각 속에서 차간거리를 좁히고 있다. 그 위험성을 보여 주는 한 가지 예는 독일의 보험 제도다.
독일에서는 ABS 브레이크 장착 차량에 대해 보험료를 10% 할인해 주다가 얼마전 이 조치를 없앴다. 브레이크를 과신한 운전자들이 과속과 안전거리 미확보로 대형사고를 일으키는 사례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최근 일본에서의 실험결과는 보면 에어백이 보호하는 거리는 핸들 주변이고, 그 이외의 범위에서는 에어백이 별로 효과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실험을 한 일본의 국민생활센터는 충돌 방향이나 충돌시 속도 등에 따라 운전자가 에어백의 보호범위를 얼마든지 벗어날 수 있으므로, 운전자는 에어백만 믿지 말고 반드시 안전띠를 착용하라고 강조한다.
첨단 기계장치들은 운전자의 안전에 분명 도움이 된다. 하지만 기계에 의해 확보되는 안전의 정도는 일부 기능에 국한된 것이다. 따라서 이를 과신하게 되면 스스로 화를 자초할 뿐만 아니라, 애꿎은 다른 사람의 생명마저 위협하게 된다.
기계에 대한 믿음보다 운전자에게 훨씬 중요한 것은 생명존중의 마음가짐, 그리고 안전거리를 유지하고 무리한 운행을 하지 않는 방어운전이다.
5. 운전에는 정말로 인격이 있다.
어떤 운전자들은 횡단보도에서 지나가겠다는 의사를 밝히는 보행자들에게 비키라고 경음기를 울리며 질주한다. 골목길에서도 시끄러운 경적을 눌러 보행자를 놀라게 하며, 아이들이 조금만 머뭇거리면 신경질을 부리면서 호통을 친다.
모두 법규를 위반한 것이건만, 실제로 단속이 되는 일이 없기 때문에 거의 아무런 죄의식도 느낌도 없이 이런 행동을 되풀이한다. 사람 위에 군림하려는 몰염치한 자동차, 아니 운전자의 모습이다.
그런데 상습적으로 이런 범법 행위를 하면서도 자신은 모범운전자라고 착각하는 운전자가 적지 않다. 여기서 우리는 ‘운전자도 인격은 있다.’ 는 말을 되새겨 본다. 대부분의 운전자들이 자신은 모범운전자이고, 자신의 운전태도가 좋은 편이라고 착각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우리의 교통현실은 ‘아니올시다’이다.
횡단보도에서 자동차가 먼저 가려는 것도 언뜻 보기에는 정당한 것처럼 보인다. 자동차는 보행자 모두 목적지에 가야하는 교통 참여자라면, 대등한 지위에서 조금 먼저 가야겠다고 경음기 좀 울린들 그것이 무슨 문제가 된다는 말인가.
하지만 그 모범(?) 운전자의 행동은 우리의 생활공간을 황폐화시키고, 어린아이들을 좁은 골방 속으로 몰아 넣으며, 사람들에게 자동차와 운전자를 미워하게 만들고 있다. 모범운전자와 자신의 운전 태도를 연결짓은 가치기준은 여러 가지이다. 어떤 사람들은 몇 년 동안 사고를 안 냈으니까 자기는 모범운전자라고 단정을 내린다. 또 어떤 이는 경찰한테 딱지를 뗀 일이 없으니까 모범운전자란다.
모두 법적인 면에서만 본다면 하자 없는 모범운전자이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로 본다면 모범과는 아무 상관도 없을 수 있고, 난폭한 폭군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자동차와 보행자는 분명 입장이 다르다. 자동차가 1000의 힘을 지니고 있다면 보행자는 1의 힘을 갖고 있는 데 불과하다. 결국 교통사고가 나면 자동차는 보행자의 목숨을 위협하는 흉기로 돌변한다. 교통에 참여하는 것은 같지만 자동차는 무서운 존재라는 것이다.
따라서 넓은 의미에서 보면 차를 타지 않고 걸어다니는 보행자는 모두 교통약자이다. 어린이나 임산부, 노약자. 더 나아가 장애인은 더욱 딱한 처지에 있다.
여기서 우리는 교통윤리의 개념을 생각하게 된다. 과연 무엇이 보다 합리적인 교통의 도덕률인가.
양보는 미덕이다. 하지만 모든 양보가 미덕은 아니다. 강요된 양보는 폭력에서 나오는 복종일 수 있다.
강자가 양보를 하는 것은 미덕으로 본다. 하지만 강자가 약자에게 양보를 요구하는 것은 폭력이다. 힘으로 누르는 것은 억지라는 것이다.
‘운전에도 인격이 있다.’는 말은 사고를 내지 않고 단순히 딱지를 떼지 않는다는 소극적인 의미로 축소될 수 없다. 교통약자의 입장을 생각하고 배려한다는 뜻으로까지 폭넓게 해석되어야 한다. 특히 골목길이나 이면도로에서는 운전 인격이 더욱 중요하다.
운전자가 교통약자를 생각하고 있는가,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배려하고 있는 가를 깊이 따져 보아야 한다. 교통약자와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의 온도가 그의 운전인격을 결정하는 것이다. 운전자들의 배려가 따스할수록 휴머니즘이 살아 있는 거리, 사람답게 살 만한 삶터가 되지 않을까?
자동차는 20세기 문명의 꽃이라고 불리운다. 하지만, 사람 위에 군림하려드는 자동차는 더 이상 문명이 아닌 야만이다. 우리가 그 야만의 주인공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
6. 나부터 모범을 보이자.
운전자의 행동은 주변에 영향을 미친다.
모두가 신호를 지키고 있을 때 차가 한 대 슬그머니 움직이면 이를 따라 위반하는 차들이 생긴다.
“남들도 위반하니까 나도 위반한다.”는 모방심리가 발동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때 묵묵히 신호를 지키고 서 있는 차량이 있으면 움직이려고 하던 다른 차들이 신호를 지키게 된다.
운전자들은 나쁜 습관을 모방하기도 하지만, 좋은 습관을 본받으려는 심리도 갖고 있다. 그래서 교통문화 수준은 나부터 높여 나가겠다는 생각이 중요하다. 내가 묵묵히 모범을 보이면 다른 사람도 나를 뒤따르게 된다.
내가 양보해 주지 않는 교통문화 속에서는 남이 나한테 양보를 해줄리 없다. 말하자면 악순환인 셈이다. 마찬가지 순환논리를 적용한다면 내가 먼저 양보한다면 점차 양보의 미덕이 확산될 것이다. ‘내가 조금 손해본다’는 마음의 여유를 갖는다면, 교통상황 전반이 악순환에서 선 순환으로 전환돼 갈 것이다.
7 .난폭 운행의 이익은 생각보다 훨씬 작다.
법규를 어기고 난폭 운전을 일삼는 운전자는 남들보다 몇 분쯤 빨리 가 는 이익을 얻게 된다.
예를 들어서 경부 고속도로 서울 대전간을 규정 속도인 시속 100킬로미터로 달리면 1시간 42분이 소요된다. 그런데 속도를 20% 높게 달려서 시속 120킬로미터로 달릴 경우 도착 시간은 18분 정도 빨라지게 된다. 하지만 그가 대형 교통사고를 낼 확률은 40% 가까이 높아진다.
도심지에서도 마찬가지다. 신호를 위반해서 1분쯤 한 교차로를 먼저 갔다고 가정하자. 대부분의 운전자들은 그로 인해 남들보다 1분, 거리로 1킬로미터 이상을 벌었다고 착각한다.
이것은 착각에 불과하다. 곧바로 다음 신호기에서 빨간 신호에 걸리거나, 체증구간에 들어서게 된다. 결과적으로 따져 보면 거의 차이가 없다.
실제 실험 결과를 보면 미친 듯이 법규를 위반하고 과속해서 2시간을 달린 거리를 , 꼬박꼬박 법규를 지키며 안전운행을 한 운전자는 4분쯤 더 걸려 도착한다. 거의 차이가 없다는 얘기다.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한 법규위반은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담보로 한 모험에 불과하다. 교통 사고가 낳게되는 엄청난 슬픔의 크기를 생각한다면, 개인의 이익은 정말 하찮을 만큼 작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짧은 시간이 목숨은 걸만큼 중요한가를 깊이 따져 볼 필요가 있다.
난폭 운전을 회피하는 한가지 방법은 여유 있는 출발을 생활화하는 것이다. 운행시간을 빠듯하게 잡는 사람은 예외 없이 마음이 급하고 서두른다. 교통사고의 귀신이 붙게 되는 것이다.
출발 전에 알맞은 운행 계획을 세우는 것, 또 운행 시간을 충분히 잡는 것은 난폭 운행을 막는 중요한 준비다. 이런 사전 준비는 여유와 양보심을 길러 준다. 특히 도심을 지나야 할 때는 20-30분쯤 여유를 갖고 출발하거나, 과감하게 지하철로 발길을 돌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8. 자동차는 나를 닮았다.
“살인도구에 대한 책임을 묻는 데 주저할 이유는 없다.”
강력한 난폭 운전자 통제 장치를 담은 법률을 마련하면서, 프랑스 교통당국이 설명한 입법취지의 일부다. 난폭 운전자에 의해 운행되는 자동차를 살인도구라고 부르는 표현이 인상적이다.
일본의 어느 철학자는 교통사고를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만큼 잠재적 위험성이 높다는 얘기다. 하물며 음주운전이나 난폭 운전 같은 반사회적 행동은 고의적 살인행위하고 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교통사고와 관련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95% 이상의 국민들이 교통사고에 불안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안전운전은 이제 선택이 아니다. 모은 운전자의 기본적인 의무인 것이다.
안전하게 몰아도 사고의 잠재적 위험이 있는 자동차, 난폭한 얼굴을 할 경우 가히 위협적이다. 자동차는 사실상 자동차가 아니라 인동차(人動車)이다. 따라서 운전자는 자기 차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
9. 교통상황을 나한테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지 말자.
미국의 초등학교 교과서에는 운전자가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인 원칙들이 있다. 그 중의 한가지는 운전자가 출발하기 전에는 ‘나’아닌 상대방을 먼저 살피고 움직이라는 것이다.
운전자는 보통 1초에 1-3회의 판단을 하게 된다. 종종 한순간의 판단 착오가 사고를 부르는 일이 있다. 예를 들면 보행자가 서 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대로 횡단보도를 건너는 경우다. 이렇게 다른 사람의 행동을 나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도로 주행시에 빨리 판단하고 빨리 결정을 내리기보다는 신중한 판단과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이 좋다. 또 나에게 불리한 쪽으로 해석하고 야기에 대비하는 방어적 자세가 중요하다.
예를 들어보자. 모든 도로에는 규정속도가 있다. 하지만 규정속도를 지키는 것이 안전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
실제 도로 주행에서 안전 속도는 도로표지판의 제한속도보다 훨씬 낮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안전 속도가 시속 20킬로미터 이하인 경우가 있다. 운전자가 주행하는 도로 상황에서 자동차를 통제할 수 있는 가장 적당한 속도가 바로 안전속도다. 법정속도만 지키면 된다는 수동적인 자세보다는 도로상황에 맞춰서 속도를 낮추는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다.
자기중심적으로 행동하면 사고의 위험이 커진다. 방어운전의 지혜를 갖자.
10. 생명존중의 교통문화를 만들자
우리는 주변에서 음주운전을 했다가 적발됐던 일, 또 어떻게 처벌을 모면했다는 얘기를 마치 무용담처럼 말하는 사람들은 흔히 볼 수 있다. 또 주변의 누군가가 음주운전으로 적발되면 이곳저곳에 전화를 걸어 연줄을 찾아 처벌을 모면케 해주려고 발버둥을 치곤 한다. 구속되거나 면허정지처분을 받게 될 경우 안됐다는 동정론을 펴기도 한다.
이런 사회 분위기 탓인지 우리 사회는 인명경시 풍조가 널리 퍼져 있고, 사회적 경각심 부족으로 음주운전이나 난폭 운전이 아직도 활개를 치고 있다, 하지만 이제 음주 운전같은 야만적인 행위에 대한 우리 사회의 태도는 분명 달라져야 한다. 사회적으로 경계하는 분위그를 만들자는 것이다.
다른 선진국들처럼 음주운전을 했다가 적발될 경우에도 그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돼야 한다. 음주운전자를 구하려는 분위기보다는 오히려 냉엄한 질책이 가해지기 때문에 말도 못 꺼내도록 하는 ‘사회적 규율’을 형성하자는 것이다.
야만적인 범죄행위를 용인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유지되어서는 안 된다. 음주운전이나 난폭 운전 같은 반사회적 행동으로 얻게 되는 개인의 이익이 얼마나 클는지 모른다. 하지만 교통사고가 낳게 되는 엄청난 슬픔의 크기보다는 훨씬 작을 것이다. 자동차의 선과 악은 사람에 달려 있다.
내 차가 흉기가 되지 않도록 운전자의 책임을 다하는 것, 모든 운전자의 의무다. 또 교통범죄에 대한 엄격한 사회적 규율을 만들어 간다면, 우리의 생활공간은 좀더 살만한 곳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이런 기본 생각 10가지는 우리가 운전을 배우기에 앞서 꼭 한번쯤 염두에 두어야 할 것들이다. 10가지 철학을 한마디로 줄인다면 ‘운전은 특권이다’로 요약된다. 운전은 아무나 , 또 아무렇게나 할 수 있는 행위가 아니라 높은 책임감을 전제로 한 사회적 행위라는 것이다.
우리가 이런 철학으로 무장하고 운전을 배운다면 우리는 다른 그 어떤 선배들보다도 빨리 ‘멋진 운전자’대열에 합류하게 될 것이다.
녹색 운전자가 지녀야 할 기본 생각 10가지
최근 운전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운전자의 62%가 “다른 차가 내 차를 추월하면 기분이 나빠진다.”는 응답을 했다. 특히 15% 운전자는 ‘매우’기분이 나쁘다고 응답했다. 이런 조사 결과는 우리 운전자들이 아직 도로를 다른 사람과 함께 쓴다는 생각이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운전할 때 감정의 지배를 받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어떤 운전자들은 추월을 당하면 그 차를 쫓아가 맞추월을 해야 직성이 풀린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값싼 자존심 경쟁은 끔찍한 사고를 일으킨다.
도로에서 모두가 으르렁대며 다투는 양상이기에 ‘교통전쟁’이 라는 말도 만들어졌다. 하지만 교통전쟁이라는 말, 이제는 쓰지 말아야겠다. 전쟁이라는 말속에는 상대방을 적대시하고 정복의 대상으로 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이런 생각을 갖고 다른 운전자나 보행자를 본다면 어떻게 될까.
도로는 공공의 사회적 공간이다. 또 다른 운전자나 보행자 모두가 정복의 대상이 나이라 더불어 함께 살아가야 할 공존의 대상이다.
이제 우리의 도로에서는 불필요한 경쟁 대시네 부드러운 조화가 필요하다.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을 갖게 될 때 우리의 교통 문화는 훨씬 부드러워질 것이다.
우리의 교통에서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조화와 공존의 개념이다.
우리나라의 교통사고 사망자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보행자다. 매년 약5천명에 이르는 사람이 보행 중에 목숨을 잃고 있는데, 이 수치는 우리보다 인구가 훨씬 많은 미국의 보행자 사망자보다도 많은 것이다. 보행자 사고를 줄이지 않는 한 교통후진국의 불명예를 씻을 수 없다.
강자 입장에 있는 운전자들이 약자인 보행자, 특히 어린이나 약자를 보호하고 우선시하는 교통문화가 정착돼야 한다. 운전자가 보행자를 보호하는 것은 강자가 약자를 보살피는 따뜻한 마음의 표현이다.
보행자 사고를 줄이기 위해 운전자가 지켜야 할 것들은 무엇인가.
- 이면도로나 생활도로, 학교 주변에서는 시속 20km 이내로 주행한다.
- 보행자가 안심하고 건너도록 주정차를 하지 않는다.
- 주택가에서는 경적을 울리지 않는다.
- 횡단보도에서는 보행자가 먼저 지나가도록 양보한다.
어렵다면 어렵고 쉽다면 쉬운 이 원칙들, 바로 운전자가 자기 자신과 가족들을 보호하는 길이기도 하다. 거리의 보행자를 내 가족으로 생각한다면 우리의 거리를 다정한 공간으로 바뀔 것이다.
“어때 내 추월 솜씨가.”
“사고는 재수 없는 사람들 일 아냐?”
운전에 어느 정도 이력이 붙기 시작하면 실력을 뽐내고 싶어한다. 무차별적으로 퍼부어지는 자동차 광고에 길들여진 우리는 틈만 나면 별 생각 없이 짜릿한 모험에 유혹 받게 된다.180킬로미터에 도전하고 싶고, 급한 내리막길에서도 엑셀러레이터에 힘을 가하기도 한다.
‘이 정도면’ 하는 때다 온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때부터가 문제이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 넘어서는 곤란한 선을 넘나들게 만든다. 최근 급속도로 좋아진 차량의 성능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
그 뒤 몇 년이 지나면 다시 이성을 회복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재수 없는(?) 운전자들은 사고를 일으켜 아무런 인연도 없는 남들을 비극의 주인공으로 만들거나 반대로 피해 당사자가 되기도 한다.
교통사고에서는 그 어느 누구도 예외일 수 없는 법. 해마다 1만명이 넘는 사망자, 5만명의 영구 장애인, 30만명의 부상자 대열에 나 자신이나 가족이 끼지 않으리라는 보장을 감히 어느 누가 할 수 있을까.
교통안전에 최선의 대책은 없다. 하지만 차선책은 있다. 바로 방어운전 길들이기다. 운전자랑 대신에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은 사항들을 되묻는 방법이다.
“내 방어운전은 몇 점인가.”
“「만일」보다 「설마」를 애용하진 않는가.”
“남들에게 고맙다고 하는 경우보다 짜증을 내는 경우가 더 많지는 않은가.”
교통사고는 인명피해나 물적 피해를 내는 데 그치지 않는다.
교통사고로 인한 불행은 보다 많은 사람을 고통스럽게 할 수 있고, 그 비극이 오래 지속된다는 점을 명심하자.
“내 차는 최고급 ABS 브레이크가 장착되어 있소, 다라서 내차는 탁월한 급제동에 능하단 말이요. 그리고 요즘 차 성능이 너무 좋아졌다구.”
차량이나 기계의 성능을 신봉하는 이런 기술만능주의자들이 있다. 하지만 이들은 안전장치의 도움을 받기보다는 교통사고를 일으킬 가능성이 매우 크다.
예전에는 일부 고급 차에만 장착돼 있던 에어백이라던가 ABS 브레이크의 보급이 최근에는 소형차량에까지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예로부터 약도 잘못 쓰면 독이 된다 했다. 이 말은 자동차의 첨단 안전장치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안전장치의 장착이 난폭 운행을 해도 나는 안전하다는 식으로 과잉 해석도리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기계장치를 믿고 난폭 운전이나 과속을 하는 어리석은 운전자들이 많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ABS 브레이크는 일반 브레이크에 비해 안전성이 훨씬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잇다. 제동력을 전자제어 방식으로 컨트롤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훨씬 안정된 상태로 차를 정지 시켜준다. 하지만 ABS 브레이크는 자동차의 자세를 안정되게 유지시켜 주는 장치일 뿐, 정지거리를 단축시켜 주는 장치는 아니다.
하지만 일부 영업사원들은 ABS 브레이크가 정지거리를 짧게 해준다고 선전을 하고 있고, 적지 않은 운전자들이 그런 착각 속에서 차간거리를 좁히고 있다. 그 위험성을 보여 주는 한 가지 예는 독일의 보험 제도다.
독일에서는 ABS 브레이크 장착 차량에 대해 보험료를 10% 할인해 주다가 얼마전 이 조치를 없앴다. 브레이크를 과신한 운전자들이 과속과 안전거리 미확보로 대형사고를 일으키는 사례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최근 일본에서의 실험결과는 보면 에어백이 보호하는 거리는 핸들 주변이고, 그 이외의 범위에서는 에어백이 별로 효과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실험을 한 일본의 국민생활센터는 충돌 방향이나 충돌시 속도 등에 따라 운전자가 에어백의 보호범위를 얼마든지 벗어날 수 있으므로, 운전자는 에어백만 믿지 말고 반드시 안전띠를 착용하라고 강조한다.
첨단 기계장치들은 운전자의 안전에 분명 도움이 된다. 하지만 기계에 의해 확보되는 안전의 정도는 일부 기능에 국한된 것이다. 따라서 이를 과신하게 되면 스스로 화를 자초할 뿐만 아니라, 애꿎은 다른 사람의 생명마저 위협하게 된다.
기계에 대한 믿음보다 운전자에게 훨씬 중요한 것은 생명존중의 마음가짐, 그리고 안전거리를 유지하고 무리한 운행을 하지 않는 방어운전이다.
어떤 운전자들은 횡단보도에서 지나가겠다는 의사를 밝히는 보행자들에게 비키라고 경음기를 울리며 질주한다. 골목길에서도 시끄러운 경적을 눌러 보행자를 놀라게 하며, 아이들이 조금만 머뭇거리면 신경질을 부리면서 호통을 친다.
모두 법규를 위반한 것이건만, 실제로 단속이 되는 일이 없기 때문에 거의 아무런 죄의식도 느낌도 없이 이런 행동을 되풀이한다. 사람 위에 군림하려는 몰염치한 자동차, 아니 운전자의 모습이다.
그런데 상습적으로 이런 범법 행위를 하면서도 자신은 모범운전자라고 착각하는 운전자가 적지 않다. 여기서 우리는 ‘운전자도 인격은 있다.’ 는 말을 되새겨 본다. 대부분의 운전자들이 자신은 모범운전자이고, 자신의 운전태도가 좋은 편이라고 착각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우리의 교통현실은 ‘아니올시다’이다.
횡단보도에서 자동차가 먼저 가려는 것도 언뜻 보기에는 정당한 것처럼 보인다. 자동차는 보행자 모두 목적지에 가야하는 교통 참여자라면, 대등한 지위에서 조금 먼저 가야겠다고 경음기 좀 울린들 그것이 무슨 문제가 된다는 말인가.
하지만 그 모범(?) 운전자의 행동은 우리의 생활공간을 황폐화시키고, 어린아이들을 좁은 골방 속으로 몰아 넣으며, 사람들에게 자동차와 운전자를 미워하게 만들고 있다. 모범운전자와 자신의 운전 태도를 연결짓은 가치기준은 여러 가지이다. 어떤 사람들은 몇 년 동안 사고를 안 냈으니까 자기는 모범운전자라고 단정을 내린다. 또 어떤 이는 경찰한테 딱지를 뗀 일이 없으니까 모범운전자란다.
모두 법적인 면에서만 본다면 하자 없는 모범운전자이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로 본다면 모범과는 아무 상관도 없을 수 있고, 난폭한 폭군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자동차와 보행자는 분명 입장이 다르다. 자동차가 1000의 힘을 지니고 있다면 보행자는 1의 힘을 갖고 있는 데 불과하다. 결국 교통사고가 나면 자동차는 보행자의 목숨을 위협하는 흉기로 돌변한다. 교통에 참여하는 것은 같지만 자동차는 무서운 존재라는 것이다.
따라서 넓은 의미에서 보면 차를 타지 않고 걸어다니는 보행자는 모두 교통약자이다. 어린이나 임산부, 노약자. 더 나아가 장애인은 더욱 딱한 처지에 있다.
여기서 우리는 교통윤리의 개념을 생각하게 된다. 과연 무엇이 보다 합리적인 교통의 도덕률인가.
양보는 미덕이다. 하지만 모든 양보가 미덕은 아니다. 강요된 양보는 폭력에서 나오는 복종일 수 있다.
강자가 양보를 하는 것은 미덕으로 본다. 하지만 강자가 약자에게 양보를 요구하는 것은 폭력이다. 힘으로 누르는 것은 억지라는 것이다.
‘운전에도 인격이 있다.’는 말은 사고를 내지 않고 단순히 딱지를 떼지 않는다는 소극적인 의미로 축소될 수 없다. 교통약자의 입장을 생각하고 배려한다는 뜻으로까지 폭넓게 해석되어야 한다. 특히 골목길이나 이면도로에서는 운전 인격이 더욱 중요하다.
운전자가 교통약자를 생각하고 있는가,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배려하고 있는 가를 깊이 따져 보아야 한다. 교통약자와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의 온도가 그의 운전인격을 결정하는 것이다. 운전자들의 배려가 따스할수록 휴머니즘이 살아 있는 거리, 사람답게 살 만한 삶터가 되지 않을까?
자동차는 20세기 문명의 꽃이라고 불리운다. 하지만, 사람 위에 군림하려드는 자동차는 더 이상 문명이 아닌 야만이다. 우리가 그 야만의 주인공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
운전자의 행동은 주변에 영향을 미친다.
모두가 신호를 지키고 있을 때 차가 한 대 슬그머니 움직이면 이를 따라 위반하는 차들이 생긴다.
“남들도 위반하니까 나도 위반한다.”는 모방심리가 발동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때 묵묵히 신호를 지키고 서 있는 차량이 있으면 움직이려고 하던 다른 차들이 신호를 지키게 된다.
운전자들은 나쁜 습관을 모방하기도 하지만, 좋은 습관을 본받으려는 심리도 갖고 있다. 그래서 교통문화 수준은 나부터 높여 나가겠다는 생각이 중요하다. 내가 묵묵히 모범을 보이면 다른 사람도 나를 뒤따르게 된다.
내가 양보해 주지 않는 교통문화 속에서는 남이 나한테 양보를 해줄리 없다. 말하자면 악순환인 셈이다. 마찬가지 순환논리를 적용한다면 내가 먼저 양보한다면 점차 양보의 미덕이 확산될 것이다. ‘내가 조금 손해본다’는 마음의 여유를 갖는다면, 교통상황 전반이 악순환에서 선 순환으로 전환돼 갈 것이다.
법규를 어기고 난폭 운전을 일삼는 운전자는 남들보다 몇 분쯤 빨리 가 는 이익을 얻게 된다.
예를 들어서 경부 고속도로 서울 대전간을 규정 속도인 시속 100킬로미터로 달리면 1시간 42분이 소요된다. 그런데 속도를 20% 높게 달려서 시속 120킬로미터로 달릴 경우 도착 시간은 18분 정도 빨라지게 된다. 하지만 그가 대형 교통사고를 낼 확률은 40% 가까이 높아진다.
도심지에서도 마찬가지다. 신호를 위반해서 1분쯤 한 교차로를 먼저 갔다고 가정하자. 대부분의 운전자들은 그로 인해 남들보다 1분, 거리로 1킬로미터 이상을 벌었다고 착각한다.
이것은 착각에 불과하다. 곧바로 다음 신호기에서 빨간 신호에 걸리거나, 체증구간에 들어서게 된다. 결과적으로 따져 보면 거의 차이가 없다.
실제 실험 결과를 보면 미친 듯이 법규를 위반하고 과속해서 2시간을 달린 거리를 , 꼬박꼬박 법규를 지키며 안전운행을 한 운전자는 4분쯤 더 걸려 도착한다. 거의 차이가 없다는 얘기다.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한 법규위반은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담보로 한 모험에 불과하다. 교통 사고가 낳게되는 엄청난 슬픔의 크기를 생각한다면, 개인의 이익은 정말 하찮을 만큼 작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짧은 시간이 목숨은 걸만큼 중요한가를 깊이 따져 볼 필요가 있다.
난폭 운전을 회피하는 한가지 방법은 여유 있는 출발을 생활화하는 것이다. 운행시간을 빠듯하게 잡는 사람은 예외 없이 마음이 급하고 서두른다. 교통사고의 귀신이 붙게 되는 것이다.
출발 전에 알맞은 운행 계획을 세우는 것, 또 운행 시간을 충분히 잡는 것은 난폭 운행을 막는 중요한 준비다. 이런 사전 준비는 여유와 양보심을 길러 준다. 특히 도심을 지나야 할 때는 20-30분쯤 여유를 갖고 출발하거나, 과감하게 지하철로 발길을 돌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살인도구에 대한 책임을 묻는 데 주저할 이유는 없다.”
강력한 난폭 운전자 통제 장치를 담은 법률을 마련하면서, 프랑스 교통당국이 설명한 입법취지의 일부다. 난폭 운전자에 의해 운행되는 자동차를 살인도구라고 부르는 표현이 인상적이다.
일본의 어느 철학자는 교통사고를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만큼 잠재적 위험성이 높다는 얘기다. 하물며 음주운전이나 난폭 운전 같은 반사회적 행동은 고의적 살인행위하고 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교통사고와 관련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95% 이상의 국민들이 교통사고에 불안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안전운전은 이제 선택이 아니다. 모은 운전자의 기본적인 의무인 것이다.
안전하게 몰아도 사고의 잠재적 위험이 있는 자동차, 난폭한 얼굴을 할 경우 가히 위협적이다. 자동차는 사실상 자동차가 아니라 인동차(人動車)이다. 따라서 운전자는 자기 차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
미국의 초등학교 교과서에는 운전자가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인 원칙들이 있다. 그 중의 한가지는 운전자가 출발하기 전에는 ‘나’아닌 상대방을 먼저 살피고 움직이라는 것이다.
운전자는 보통 1초에 1-3회의 판단을 하게 된다. 종종 한순간의 판단 착오가 사고를 부르는 일이 있다. 예를 들면 보행자가 서 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대로 횡단보도를 건너는 경우다. 이렇게 다른 사람의 행동을 나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도로 주행시에 빨리 판단하고 빨리 결정을 내리기보다는 신중한 판단과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이 좋다. 또 나에게 불리한 쪽으로 해석하고 야기에 대비하는 방어적 자세가 중요하다.
예를 들어보자. 모든 도로에는 규정속도가 있다. 하지만 규정속도를 지키는 것이 안전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
실제 도로 주행에서 안전 속도는 도로표지판의 제한속도보다 훨씬 낮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안전 속도가 시속 20킬로미터 이하인 경우가 있다. 운전자가 주행하는 도로 상황에서 자동차를 통제할 수 있는 가장 적당한 속도가 바로 안전속도다. 법정속도만 지키면 된다는 수동적인 자세보다는 도로상황에 맞춰서 속도를 낮추는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다.
자기중심적으로 행동하면 사고의 위험이 커진다. 방어운전의 지혜를 갖자.
우리는 주변에서 음주운전을 했다가 적발됐던 일, 또 어떻게 처벌을 모면했다는 얘기를 마치 무용담처럼 말하는 사람들은 흔히 볼 수 있다. 또 주변의 누군가가 음주운전으로 적발되면 이곳저곳에 전화를 걸어 연줄을 찾아 처벌을 모면케 해주려고 발버둥을 치곤 한다. 구속되거나 면허정지처분을 받게 될 경우 안됐다는 동정론을 펴기도 한다.
이런 사회 분위기 탓인지 우리 사회는 인명경시 풍조가 널리 퍼져 있고, 사회적 경각심 부족으로 음주운전이나 난폭 운전이 아직도 활개를 치고 있다, 하지만 이제 음주 운전같은 야만적인 행위에 대한 우리 사회의 태도는 분명 달라져야 한다. 사회적으로 경계하는 분위그를 만들자는 것이다.
다른 선진국들처럼 음주운전을 했다가 적발될 경우에도 그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돼야 한다. 음주운전자를 구하려는 분위기보다는 오히려 냉엄한 질책이 가해지기 때문에 말도 못 꺼내도록 하는 ‘사회적 규율’을 형성하자는 것이다.
야만적인 범죄행위를 용인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유지되어서는 안 된다. 음주운전이나 난폭 운전 같은 반사회적 행동으로 얻게 되는 개인의 이익이 얼마나 클는지 모른다. 하지만 교통사고가 낳게 되는 엄청난 슬픔의 크기보다는 훨씬 작을 것이다. 자동차의 선과 악은 사람에 달려 있다.
내 차가 흉기가 되지 않도록 운전자의 책임을 다하는 것, 모든 운전자의 의무다. 또 교통범죄에 대한 엄격한 사회적 규율을 만들어 간다면, 우리의 생활공간은 좀더 살만한 곳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이런 기본 생각 10가지는 우리가 운전을 배우기에 앞서 꼭 한번쯤 염두에 두어야 할 것들이다. 10가지 철학을 한마디로 줄인다면 ‘운전은 특권이다’로 요약된다. 운전은 아무나 , 또 아무렇게나 할 수 있는 행위가 아니라 높은 책임감을 전제로 한 사회적 행위라는 것이다.
우리가 이런 철학으로 무장하고 운전을 배운다면 우리는 다른 그 어떤 선배들보다도 빨리 ‘멋진 운전자’대열에 합류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