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소식세종마을(서촌) "도심보행길걷기", 눈으로 함께 걸어볼까요?

지난 6월 7일 예정되어있던 '녹색교통과 함께하는 도심 보행길 걷기'가 메르스로 인해 연기되었습니다.

예상보다 많은 회원님들께서 신청하셨으나 아쉽게도 진행되지 못해 죄송할 따름입니다.

이번 '도심보행길걷기' 는 세종마을로 불려지는 종로구 통인동에서 진행될 예정이었습니다.

세종마을은 어떤 곳일까요?

세종마을은 인왕산 동쪽과 경복궁 사이에 위치한 지역으로, 

조선시대에는 북부 준수방, 인달방, 순화방, 웃대, 우대, 상대라고도 불렸습니다.

이곳은 조선시대 중인과 일반 서민의 삶의 터전이었으며, 세종대왕의 생가터, 백사 이항복의 집터가 있습니다. 

세종마을은 현대 동양화단의 거목 남정 박노수의 집, 한국화가 이상범이 명작을 쏟아낸 화실 등 

근대 예술가들의 숨결이 살아 숨쉬고 있으며, 평범한 사람들의 오래된 삶을 터전 663동의 한옥마을이 있는 곳입니다. 

2010년부터 주민들은 세종대왕의 얼이 살아있는 문화예술 마을로 꾸려가고자 이 지역을 '세종마을'이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출처 : 종로구청 홈페이지

세종마을에 여러 문화재 및 관광코스가 있지만, 우리는 그 중 몇가지 지점을 돌아보고자 했습니다.

이제 차근차근 각 지점이 어떤 곳인지 살펴보겠습니다.


1. 통의동 백송터(창의궁터)



우리나라 백송 중에서 가장 크고(높이 16m. 둘레 5m) 아름답기로 유명한 통의동의 백송(소나무과에 속하는 상록침엽교목)은 

1962년 천연기념물 제 4호로 지정되었으나 1990년 7월 17일 태풍으로 넘어져 고사됨으로써 

1993년 문화재 지정이 해제되고, 현재 나무 밑둥만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이후 주민들의 노력으로 백송의 후손 4그루를 심어 그 혈통을 잇고 있다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현재는 이 네 그루를 각각 나워 관리하고 있어 나무마다 관리자를 명시해 놓았습니다. 

좁은 길 사이 조그만 공터에 넓다랗게 자리잡은 백송이 아름다워 보입니다. 

나무 껍질이 비늘처럼 벗겨져서 하얀색을 띄어 백송이라고 한답니다. 


2. 창성동 한옥마을



조선시대 고관대작이 살았던 북촌과는 달리 중인과 일반 서민의 삶의 터전이었던 서촌에는 한옥 600여동이 남아있는데요, 

그 중 창성동과 통의동 지역의 한옥들이 보존상태가 양호하다고 합니다. 

창성동 한옥마을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한옥과는 달리 알록달록한 색으로 칠해져 있었습니다. 

지붕은 기와로 되어 한옥의 모습 그대로이지만, 벽은 겨자색, 붉은색, 노란색 등으로 옷입어 있었습니다. 

한옥 사이사이가 좁아 마치 골목이 미로처럼 이어져 있었는데요, 

골목에 앉아 노래를 크게 부르시던 아주머니가 인상깊었습니다. 

각 집 앞에는 옛 기와들이 쌓아져 있기도 했고, 어떤 집에는 꽃이나 화분들도 예쁘게 꾸며놓아 발길이 즐겁습니다.


3. 쌍흥문터



쌍흥문은 효성이 지극한 조원(瑗 : 1544~1595)을 기려 나라에서 정문을 세웠던 터를 말합니다. 

조원의 아들 회신, 희철도 이름난 효자여서 쌍흥문이라 했고, 효자동의 이름도 여기에서 유래 되었습니다. 

지금은 표지석밖에 남아있지 않아 어떻게 쌍흥문이 있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효를 강조했던 과거 선조들의 가르침을 한번쯤 생각해볼 만한 곳입니다.


4. 통인시장



통인시장은 일제강점기인 1941년 인근의 일본인들을 위하여 조성된 공설시장을 모태로 하며, 

6·25전쟁 이후 서촌(西;경복궁 서쪽 마을) 지역에 인구가 급격히 증가함에 따라 

옛 공설시장 주변으로 노점과 상점이 들어서면서 시장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2011년에는 시장상인회가 마을기업으로 (주)통인커뮤니티를 법인 등록하여 

통합콜센터와 배송센터를 설치하고 온라인 쇼핑몰도 개설하였습니다. 

식당, 반찬가게, 채소, 과일, 생선, 정육, 내의, 신발, 옷 수선, 가방 및 구두 수선 업소 등 

70여개의 점포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2012년 1월부터 '도시락카페 통()'이 운영되어 큰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만일 이번 도심보행길걷기가 진행되었더라면 점심시간에 엽전을 사서 

이리저리 시장 내의 다양한 먹거리들을 맛볼 수 있었을텐데 아쉽기만 합니다.


5. 자수궁터



자수궁은 조선조 광해군 때에 세운 궁궐입니다. 

조선 건국 초에는 북학이라는 학당이 이곳에 서 있었으나 광해군 8년(1616) 경희궁 일대에 

왕의 기운이 서린다는 풍수설이 나돌아 광해군이 이 기운을 차단할 목적으로 궁궐을 지었다고 합니다. 

자수궁은 인왕산()에 왕기()가 있다는 말 때문에 지었다는 궁으로 옥인동()에 있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광해군 8년에 창건되었다가, 인조 1년에 헐리고 다시 자수원으로 이름을 고친 뒤 이원()이 되었는데, 

한때 5천여 명이 수용된 최대의 시설이었다고 합니다.

자수궁터 역시 이름대로 터만 남아 있지만 왕의 기운은 아직 남아있겠죠?

자수궁터 인근의 주택가에서 태어난 아이들 중에 큰 인물이 나오게 될지 기대해봅니다.


6. 인왕산 수성동 계곡


인왕산 동쪽 능선 아래에 있는 수성동 계곡은 조선시대 깨 이 일대에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가 맑아서 수성동이라 불렸습니다. 

겸재 정선의 그림에 수성동(水聲洞) 회화에 등장하면서 유명세를 타게 되었습니다. 

수성동에서 '동(洞)' 행정구역이 아닌 '골짜기', '계곡'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수성동 계곡은 조선시대 당시의 풍경을 오늘날에도 그대로 유지하고 있고,

이 일대가 조선후기 중인층을 중심으로 한 위항문학(委巷文學)의 주 무대였다는 점에서 문학사적으로도 의미가 있습니다.

최근 심각한 가뭄으로 계곡의 물이 모두 말라버려 정취를 온전히 느낄 수 없었지만

계곡 옆 정자에서 시원한 바람은 여전합니다
 

7. 이상범 가옥 및 화실


종로구 누하동(樓下洞)에 있는 동양화가 청전(靑田) 이상범(1897~1972)이 살았던 집과 작품 활동을 하던 화실입니다. 

2005년 4월 15일 등록문화재 제171호로 지정된 이곳은 

이상범 선생이 사망하기 전까지 이곳에서 34년간 작품활동을 했던 곳입니다.
 
가옥과 화실이 워낙 원형 그래도 보존되어 있어 여닫이 문이 달린 텔레비젼과 부엌 아궁이도 볼 수 있습니다.
 
특이한 점은 가옥 담장 안쪽에 있는 벽화가 일부만 남아있는 것이었는데,
 
한국전쟁시절 포탄에 맞아 담벼락이 무너졌지만 이 또한 역사의 한 부분이라하여 벽화를 완전복원 하지 않고, 

담장만 보수해 두었다고 합니다. 

참고로 주택과 화실에서 이상범 선생의 작품을 감상할 수 없었던 것이 조금 아쉽습니다. 


8. 이상 집터


통인동에는 천재 시인이자 소설가인 이상(李箱 1910~1937)이 살았던 집이 있습니다.
 
현재 '문화유산 국민신탁'에서 이 집을 매입하여 전시관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상의 아버지가 이발소를 운영하던 사직동에서 태어난 이상은 큰 아버지 김연필의 양자로 들어가던 세살부터(1912년) 

1933년까지 초,중,고등학교를 이 곳에서 다니고, 

총독부의 선축과 기사로 근무할 때까지 스물 두해를 살았던 곳이라고 합니다. 

현재는 '이상의 집'이라는 이름으로 개관하기 위한 공사가 진행중이었습니다. 


회원

녹색교통운동의 새로운 소식을 SNS에서 만나요.


#움직이는소나무 의 새로운 소식을 SNS로 만나보세요!